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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가 은퇴지로 직접 골라 지은 도시라면, 지금도 여행지로 손색없을까요? 스플리트에 발을 디딘 순간, 제가 처음 든 생각은 "유적지가 아니라 그냥 동네네"였습니다. 천년이 넘은 돌벽 사이에 카페가 있고, 궁전 터 안에 사람들이 빨래를 널고 있었으니까요. 낭만적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꽤 컸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이게 유적지인지 동네인지 모르겠습니다
스플리트의 핵심은 단연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cletian's Palace)입니다. 여기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이란 서기 약 300년에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직접 설계를 지시한 복합 요새 겸 별장으로, 성벽 안쪽 면적만 약 3만 평방미터에 달합니다. 단순한 폐허가 아니라 지금도 사람이 살고, 카페가 영업 중이고, 에어비앤비 숙소가 들어차 있는 살아 있는 도시 구조물이라는 점이 독보적입니다.
제가 직접 골목을 걸어봤는데, 처음 10분 안에 두 번 길을 잃었습니다. 의도된 미로 설계, 즉 적군이 침입했을 때 내부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굴곡지게 만든 구조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등재된 이 구역은 "쉽게 말해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출처: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점도 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독교를 가장 강하게 박해한 황제로 기록되어 있는데, 황제가 묻힌 그 영묘(Mausoleum)가 훗날 성 돔니우스 대성당(Cathedral of Saint Domnius)으로 개조됩니다. 기독교를 탄압한 황제의 무덤이 기독교 성당이 된 것입니다. 제가 그 성당 앞에 서서 이 사실을 떠올렸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역사책에서 읽은 것과 실제로 그 앞에 서는 건 전혀 다른 감각이더라고요.
디오클레티아누스는 3세기 혼란기, 즉 약 50년간 황제가 30~40명씩 쿠데타와 암살로 교체되던 위기의 시대에 로마 제국을 사두 정치(Tetrarchy) 체제로 재편해 안정을 회복한 황제입니다. 사두 정치란 제국을 네 개 구역으로 나눠 두 명의 정황제와 두 명의 부황제가 분할 통치하는 방식으로, 쉽게 말해 한 명이 모든 걸 감당하는 대신 네 명이 분담해 붕괴를 막은 구조입니다. 그 거대한 책임을 스스로 내려놓고 이곳에서 양배추를 키우며 여생을 보냈다는 사실이, 이 도시 전체의 뉘앙스를 만들어냅니다.
궁전 안 열주 광장(Peristyle)에서는 저녁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버스킹을 듣거나 계단에 앉아 와인을 마십니다. 처음엔 로맨틱해 보이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관광 성수기엔 그 낭만이 아니라 소음과 인파가 먼저 다가옵니다. 고즈넉한 유적지의 분위기를 기대하고 갔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습니다.
-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서기 약 300년 건축, 현재도 주거·상업 시설이 공존하는 생활 유적지
- 내부 골목은 의도적 미로 구조로 설계, 처음 방문하면 길 잃는 것이 정상
- 황제의 영묘가 성 돔니우스 대성당으로 개조된 역사적 아이러니가 존재
- 성수기 오전에 방문하면 관광객이 적어 궁전 본래의 분위기를 더 잘 느낄 수 있음
리바 거리와 아드리아해, 기대와 현실 사이 어디쯤
스플리트 여행에서 리바 거리(Riva Promenade)를 빼면 무언가 빠진 느낌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리바 거리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남쪽 성벽을 따라 아드리아해와 맞닿아 있는 해안 산책로로, 카페와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어 스플리트의 응접실 역할을 합니다. 낮에는 야자수 그늘 아래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잔잔한 바닷바람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인데, 제가 직접 앉아봤을 때는 5월 오전 23도에도 뷰 프리미엄이 붙은 커피값(2.9유로 vs. 골목 안쪽 2.2유로)이 체감되더라고요.
아드리아해(Adriatic Sea)는 이탈리아 반도와 발칸 반도 사이에 위치한 지중해의 내해로, 쉽게 말해 바닷물이 외해보다 훨씬 잔잔하고 투명도가 높아 수영과 스노클링에 최적화된 환경입니다. 실제로 올드타운에서 약 1km 거리에 있는 자갈 해변(Bačvice 인근)까지 걸어가서 손을 담가봤는데, 물이 맑고 차가우면서도 깊지 않아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적합한 구조였습니다. 모래사장이 아닌 자갈 해변이라 오히려 수질이 더 깨끗하게 유지된다는 점이 제가 현장에서 확인한 부분입니다.
크로아티아 관광청 통계에 따르면 스플리트를 포함한 달마티아 해안 지역의 연간 관광객은 최근 수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해 크로아티아 전체 관광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출처: Croatian National Tourist Board). 그러나 이 수치 뒤에는 다른 현실이 있습니다. 크로아티아 인구는 20년 전 약 450만 명에서 현재 약 370만 명으로 급감했고, 출생률(합계출산율)은 1.2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를 의미하는 지표로,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을 크게 밑돌고 있는 상태입니다. 관광 수입은 늘지만 젊은 세대가 서유럽으로 빠져나가는 구조적 문제가 겹쳐 있는 셈입니다.
올드타운 골목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이 구조적 모순이 체감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관광지 외곽으로 벗어나는 순간 도로 포장이 갈라지거나 정비가 덜 된 건물들이 눈에 띄었고, 일요일에는 올드타운 바깥 대부분의 빵집과 상점이 문을 닫아서 오후 2시에 먹거리를 구하느라 꽤 고생했습니다. 관광 인프라와 일상 생활 인프라 사이의 낙차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스플리트를 거점 삼아 당일치기로 흐바르 섬(Hvar)이나 인근 섬으로 페리를 타고 나가는 것은 여전히 강력히 권할 만합니다. 올드타운보다 섬 쪽이 관광 밀도가 낮고 아드리아해 본래의 투명함을 더 잘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수기 페리는 지정석 없이 선착순 탑승이라 출발 30분 전 이상 여유를 두고 줄을 서지 않으면 자리를 못 구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그 버스에서 겨우 탑승한 경험이 있어서 이 부분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스플리트 올드타운 관광, 몇 박이 적당한가요?
A.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내부와 리바 거리 중심으로만 보면 하루로도 핵심은 다 돌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직접 다녀보니 인근 섬 당일치기까지 포함하면 2박 3일이 가장 무리 없는 일정이었습니다. 숙소는 올드타운 안보다 외곽 쪽이 가격 대비 품질이 낫고 이동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Q. 스플리트에서 수영할 수 있는 해변이 있나요?
A. 있습니다. 올드타운에서 걸어서 약 1km 거리에 자갈 해변이 있고, 아드리아해 특성상 수질이 맑고 파도가 잔잔해 수영하기 좋습니다. 모래사장이 아니라 자갈이라 오히려 물이 더 투명하게 유지되는 편이었고, 수심이 얕아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도 적합합니다.
Q. 스플리트 물가, 생각보다 비싼가요?
A. 올드타운 해변가 카페는 뷰 프리미엄이 붙어 커피 한 잔이 3유로 안팎입니다. 반면 골목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2유로 초반대 커피에 샌드위치도 6~8유로 선에서 해결됩니다. 직접 슈퍼마켓에서 생선과 재료를 사 와 먹으면 레스토랑 대비 절반 이하 비용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가 가능했습니다.
Q. 스플리트에서 흐바르 섬 당일치기, 페리 예약 필요한가요?
A. 성수기에는 지정석 없이 선착순 탑승이라 최소 출발 30~40분 전에 줄을 서야 합니다. 미리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시간을 딱 맞춰 왔다가 자리를 못 구하는 경우도 실제로 발생합니다. 여유 있게 줄을 서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처입니다.
결론
스플리트는 분명히 한 번쯤 와볼 만한 도시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이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구조물이 존재하고, 아드리아해의 투명한 물빛은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다만 9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그때 제가 좋아했던 고즈넉함과 한적함은 이제 성수기 스플리트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이 도시를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오전 일찍 올드타운 골목을 걷고, 낮 더위엔 자갈 해변이나 숙소에서 쉬고, 흐바르 같은 인근 섬을 하루 끼워 넣는 일정입니다. 저는 이번에 올드타운 바깥 로컬 주거 지역에 숙소를 잡았는데, 그 선택이 오히려 스플리트의 다른 면을 보게 해줬습니다. 관광지 뒤편의 생활감, 동네 고양이들, 일요일에 닫힌 빵집 앞에서 느낀 당혹감까지 포함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