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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홀 하면 초콜릿 힐이나 로복강 짚라인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녀오고 나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건 관광지 사진이 아니었습니다. 해변가 로컬 식당에 앉아 갓 튀긴 오징어 튀김에 얼음처럼 차가운 생맥주 한 잔 비우던 그 순간이었습니다. 보홀이 왜 한 번 가고 나면 꼭 다시 가게 되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로복강 짚라인과 초콜릿 힐, 기대와 달랐던 점이 있다면?
보홀 일정을 짤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넣는 코스가 로복강(Loboc River) 크루즈와 짚라인(Zip Line), 그리고 초콜릿 힐(Chocolate Hills)입니다. 로복강 짚라인은 강 위를 공중에서 가로지르는 체험으로, 탁 트인 수면 위를 빠르게 활강하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납니다. 제가 직접 타봤는데 출발 전엔 무서웠다가 착지하고 나서 "한 번 더 타도 되나요?"를 진지하게 물어봤을 정도였습니다.
초콜릿 힐은 보홀을 대표하는 지형 명소로, 1,268개의 원뿔형 석회암 언덕이 펼쳐지는 풍경입니다. 건기가 되면 풀이 갈색으로 마르면서 마치 초콜릿을 늘어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이 지형은 필리핀 국가지질공원(National Geopark)으로 지정된 보홀의 공식 상징이기도 합니다(출처: 필리핀 관광부 공식 사이트). 뷰포인트에 올라서면 끝없이 펼쳐지는 언덕들이 정말 비현실적이어서 잠깐 멍하니 서 있게 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뷰가 기대보다 좀 평범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숙소 방에서 보이는 바다 전망이 썩 좋지 않았을 때 "뷰가 썩었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고, 그게 오히려 웃기게 기억에 남을 정도였습니다. 여행이란 게 꼭 예쁜 것만 남는 게 아니니까요. 여행지에서 기대와 현실 사이의 온도차를 느끼는 것 자체가 경험이라는 걸, 보홀에서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보홀 주요 액티비티 한눈에 정리
- 로복강 짚라인(Loboc River Zip Line): 강 위를 활강하는 체험형 액티비티. 오셔널 선택 사항으로 현지에서 추가 신청 가능합니다.
- 초콜릿 힐(Chocolate Hills): 1,268개 석회암 언덕. 건기(11~5월)에 방문해야 초콜릿색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 로복강 크루즈(Loboc River Cruise): 강 위 수상 레스토랑 선박에서 식사하며 정글 사이를 유람하는 코스입니다.
- 혈액 컴퍼스(Blood Compact) 기념비: 스페인 탐험가와 원주민 추장이 피로 맹세한 역사적 장소로, 보홀 역사 투어의 필수 코스입니다.
로컬 맛집에서 생맥주 한 잔, 이게 진짜 보홀이었습니다
보홀 여행의 진짜 알맹이가 어디 있는지 아시겠어요? 저는 저녁에 해변가 로컬 식당 앞에 무작정 앉았을 때 알았습니다. 어두운 도로 따라 걷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고,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생각지도 못한 로컬 비치가 나오는 그 구조가 보홀의 매력 그 자체였습니다. 프레임도 없이 그냥 예쁜 곳, 꾸미지 않아서 더 멋진 풍경이 거기 있었습니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주문한 건 왕새우 구이, 오징어 튀김, 그리고 블랙페퍼 시크 소스를 얹은 요리였습니다. 여기서 블랙페퍼 시크(Black Pepper Sauce)란 굵게 간 흑후추를 버터와 굴소스에 졸여 만든 필리핀식 볶음 소스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한국의 짜장 소스처럼 진하고 달달하면서도 후추 향이 도는 맛인데, 제가 직접 먹어봤더니 우리가 아는 그 블랙페퍼 맛과는 약간 달랐습니다. 더 달달하고 부드러웠고, 왕새우에 얹히니 생각보다 훨씬 잘 어울렸습니다.
오징어 튀김은 특히 압도적이었습니다. 해물이 정말 많이 들어 있었고, 오징어 자체가 되게 부드럽게 튀겨져 있었습니다. 새우도 따로 잔뜩 들어 있어서 사실 이것만으로 배가 찼습니다. 필리핀 현지에서 해산물이 신선한 이유는 어업 중심 지역 특성상 당일 조달이 기본이기 때문인데, 실제로 필리핀 통계청(PSA) 자료에 따르면 보홀은 필리핀 내 주요 어업 생산 지역 중 하나로 분류됩니다(출처: 필리핀 통계청 PSA). 먹으면서 "이 맛은 보홀 아니면 못 먹는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였습니다.
거기에 얼음 잔 생맥주까지 한 잔 마시는데, 그 시원함은 말로 설명이 안 됩니다. 크래프트 비어(Craft Beer)처럼 정교한 맛은 아니었습니다. 크래프트 비어란 소규모 양조장에서 특수한 재료와 기법으로 소량 생산하는 수제 맥주를 말하는데, 보홀 해변에서 마시는 건 그런 복잡한 맛이 아닙니다. 그냥 차갑고, 시원하고, 파도 소리가 반주로 깔리는 맥주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음식 맛보다 그 순간의 공기가 더 기억에 남을 줄은 몰랐거든요.
망고 디저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망고 맛이 강하게 나지는 않았지만 달콤하고 되게 부드러운 식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행 마지막 밤이 다가올수록 아쉬움이 더 진해졌는데, 이 달달한 마무리가 그 아쉬움을 조금은 달래줬습니다. 인생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쳐서 떠나왔지만 완전히 편하지만도 않고, 그래도 이 순간들이 그려질 것 같다는 감각.
자주 묻는 질문
Q. 보홀 여행 며칠이 적당한가요?
A. 제 경험상 3일이 기본 코스로 딱 맞습니다. 로복강 짚라인, 초콜릿 힐, 혈액 컴퍼스 기념비를 하루에 묶고, 하루는 바다와 로컬 맛집 탐방에 쓰면 여유가 생깁니다. 욕심부려 빡빡하게 짜면 오히려 정작 중요한 여유를 놓칩니다.
Q. 보홀 짚라인은 무서운가요? 초보도 탈 수 있나요?
A. 출발 직전엔 다들 무섭다고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타고 나면 "또 타도 되냐"고 묻게 되는 게 로복강 짚라인입니다.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고, 현지 가이드 안내를 따르면 초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Q. 보홀 로컬 맛집은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
A. 큰 도로에서 작은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는 게 답입니다. 저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갔더니 예상치 못한 로컬 비치와 식당이 나왔습니다. 프레임 없이 세팅된 뷰에 해산물이 신선한 식당들이 숨어 있으니, 일부러 골목 탐방 시간을 잡아두시는 게 좋습니다.
Q. 초콜릿 힐은 언제 가야 갈색으로 보이나요?
A. 건기인 11월부터 5월 사이가 최적입니다. 이 시기에 풀이 바짝 말라 갈색으로 변하면서 실제로 초콜릿처럼 보입니다. 우기에 가면 초록빛 언덕을 보게 되는데, 그것도 나름 다른 매력이 있긴 합니다만 '초콜릿' 느낌은 건기에만 납니다.
Q. 보홀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은 뭔가요?
A. 제 기준에서는 왕새우 블랙페퍼 시크 소스, 오징어 튀김, 그리고 망고 디저트 이 세 가지입니다. 특히 해변가 로컬 식당에서 먹는 오징어 튀김은 해물이 압도적으로 많고 식감이 부드러워서 보홀 아니면 못 먹는 맛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결론
보홀은 다녀오고 나서도 한동안 잔상이 꽤 길게 남는 여행지입니다. 로복강 짚라인이나 초콜릿 힐 같은 유명 관광지가 보홀을 가야 할 이유라면, 로컬 해변가 식당에서 얼음 잔 생맥주 한 잔 비우는 순간이 보홀을 다시 가고 싶어지는 이유입니다. 제 경험상 이 두 가지를 모두 챙겨야 진짜 보홀을 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복잡한 일정 없이, 괜찮은 사람이랑 맛있는 거 먹고 시원하게 한잔 하면서 쉬기엔 보홀만 한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칠 때마다 그 밤의 파도 소리랑 차가운 맥주 맛을 꺼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여행은 충분히 값었습니다. 보홀을 고민 중이시라면, 일단 가보시길 권합니다. 가고 나서 후회하는 분은 제 주변에 아직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