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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긴자를 '너무 비싸서 구경만 하는 동네'라고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고급 브랜드가 즐비한 거리 이미지만 머릿속에 박혀 있어서, 막상 발을 들이기까지 꽤 망설였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직접 12시간을 종일 누벼보니, 긴자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층적인 동네였습니다. A5 와규를 런치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야끼니쿠 식당이 있고, 1936년부터 자리를 지킨 킷사텐이 있고, 층마다 세계가 달라지는 문구 백화점이 있었습니다. 오해가 확신으로 바뀌는 데 하루면 충분했습니다.

가성비 맛집: 긴자에서 A5 와규와 회전초밥을 합리적으로 먹는 법
긴자에서 A5 와규를 먹는다고 하면 대부분 "그거 저녁에 1인당 3만 엔은 각오해야 하지 않아?"라는 반응이 돌아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 런치 타임을 노리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제가 방문한 야끼니쿠 식당은 입구가 꽤 어두컴컴해서 순간 잘못 찾아왔나 싶었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정면이 통유리로 뚫려 있어 자연광이 환하게 들어왔습니다. 런치 세트에는 A5 와규 여러 부위는 물론이고 김치, 나물, 미역국, 샐러드, 디저트 샤베트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마블링(marbling)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고기 근육 사이에 지방이 그물처럼 퍼져 있는 정도를 뜻하며 수치가 높을수록 육질이 부드럽고 풍미가 진해집니다. 접시 위에 올라온 고기는 마블링 등급만 봐도 이미 기대치가 훌쩍 올라가는 비주얼이었습니다.
우설(牛舌)을 먼저 구웠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우설이 생소한 편이지만, 일본 야끼니쿠에서는 가장 먼저 집어 드는 부위입니다. 두툼하게 썰려 있어 겉은 살짝 바삭하고 속은 꼬들꼬들한 식감이 살아 있었는데, 제가 직접 구워 먹어보니 이게 왜 인기 부위인지 단번에 납득이 됐습니다. 한 가지 신기했던 점은 불판 위에 환풍 후드가 따로 없었다는 것인데, 연기가 테이블 아래로 바로 빠지는 다운드래프트(downdraft) 방식 — 연기를 위가 아닌 아래 방향으로 흡입하는 배기 구조 — 이었습니다. 옷에 냄새가 배지 않아서 오히려 더 쾌적하게 식사할 수 있었습니다.
양이 아주 넉넉하지는 않지만, 일본 야끼니쿠 런치 기준으로는 꽤 준수한 구성입니다. 저녁 코스와 비교하면 가격이 현저히 낮으니, A5 와규를 처음 경험해보고 싶다면 런치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회전초밥은 긴자 도큐 플라자 건물의 네무로 하나마루에서 먹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회전초밥이라고 하면 '저가형 패스트푸드'로 인식하기 쉬운데, 제가 경험한 네무로 하나마루는 그 공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오픈 전부터 줄이 만들어지고, 심지어 일본 현지 중장년층이 주를 이루는 곳이라 '현지인 검증 맛집'이라는 수식어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꿀팁이라면 1층이 아니라 지하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입니다. 1층에서 줄을 서면 이미 엘리베이터가 꽉 찬 상태로 내려옵니다.
아부리(炙り) 연어라는 메뉴가 있는데, 이는 초밥 위 재료를 토치로 살짝 그을려 표면만 익힌 방식을 말합니다. 열을 가하면 지방이 녹아 향미가 한층 깊어지는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였습니다. 550엔짜리 오토로(大トロ) — 참치 뱃살 중에서도 가장 지방이 풍부한 최상급 부위 — 도 주문해봤는데, 이 가격에 이 크기와 신선도라면 가성비 면에서 이길 데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 야끼니쿠 런치: A5 와규 + 반찬 풀세트, 저녁 대비 현저히 합리적인 가격
- 네무로 하나마루: 오픈 30분 전 도착, 지하 2층 엘리베이터 이용 필수
- 아부리 연어·오토로는 주문 필수 메뉴, 회전 레일보다 주문서 직접 작성 추천
- 촬영 시 입구 팻말 확인 필요 — 얼굴 노출만 피하면 내부 촬영 가능
이토야와 킷사텐: 긴자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간의 결
이토야(ITOYA)는 '그냥 문구점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들어가면 거의 모두가 1시간 30분 뒤에야 정신을 차립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1층 입구에서 엽서 몇 장 훑어보고 금방 나오겠다 싶었는데, 2층 편지지 코너에서 완전히 발이 묶였습니다.
2층은 계절마다 테마가 바뀌는 카드와 편지지, 메모지로 가득한 공간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벚꽃 시즌을 앞두고 있어서 사쿠라 모티프의 팝업 카드가 진열대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팝업 카드(pop-up card)란 펼치면 입체 구조물이 튀어나오는 방식의 카드로, 일반적으로 선물용으로 쓰이지만 그 자체로 인테리어 소품이 될 만큼 정교하게 제작됩니다. 벚꽃 나무 모양을 하나 구입해 장식장 위에 올려뒀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만족감이었습니다.
3층은 만년필(萬年筆) 매장입니다. 만년필이란 잉크를 내부 저장소에 담아 펜촉으로 흘려 쓰는 필기구로, 볼펜과 달리 필압과 각도에 따라 획의 굵기가 달라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토야 3층은 국내외 주요 브랜드 제품을 한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는 규모인데, 진열장 앞에 서서 펜 하나에 99만 엔짜리 가격표를 확인하고는 친구와 둘이 '이게 100만 원인지 1,000만 원인지' 환율 계산을 하며 굳어버렸습니다. 그냥 눈으로만 감상하고 조용히 4층으로 올라갔습니다.
7층은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층입니다. 수천 가지 색감의 종이와 잉크가 색상별로 정렬된 공간인데, 각 색깔에 고유한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색명(色名) — 즉 색깔에 부여된 고유한 이름 체계 — 이 세분화되어 있어서, 단순히 '빨강'이 아니라 '회색이 도는 붉은색' 혹은 '노랑빛이 감도는 주홍' 같은 식으로 구분됩니다. 일본이 색 감수성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 문화인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킷사텐(喫茶店)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면, 이는 일본의 전통 커피 전문점으로 단순한 카페와 달리 오래된 인테리어와 격식 있는 서비스가 결합된 공간을 뜻합니다. 긴자에는 대표적인 킷사텐이 두 곳 있었는데, 제가 방문한 첫 번째는 1936년 창업해 90주년을 맞이한 트리콜로르(Tricolore)였습니다. 밖에 줄이 없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실제로는 줄이 안쪽 계단에서 이미 2층까지 이어져 있었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1층 안쪽 테이블로 안내받았습니다.
이곳은 넬 드립(nel drip) 방식으로 유명합니다. 넬 드립이란 천 필터를 사용해 높은 위치에서 커피를 따르는 추출 방식으로, 종이 필터보다 기름 성분이 더 잘 추출되어 바디감이 묵직한 것이 특징입니다. 일반적으로 퍼포먼스가 볼만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가 간 날은 신입 직원분이 담당하셨는지 아주 조심스럽게 낮은 위치에서 따라주셨습니다. 기대했던 높이감은 없었지만, 그래도 라테 맛 자체는 완전히 제 취향이었습니다. 토스트는 솔직히 평범한 수준이었고요.
두 번째로 방문한 츠바키야 커피(椿屋珈琲)는 다이쇼 시대 — 1912년부터 1926년까지의 일본 근대 문화 황금기 — 를 콘셉트로 잡아 직원들이 메이드복 유니폼을 착용합니다. 처음에는 다소 의아했는데, 막상 앉아보니 로얄 코펜하겐(Royal Copenhagen) 식기와 사이폰 커피 서비스가 어우러져 클래식한 분위기가 살아났습니다. 로얄 코펜하겐은 1775년 덴마크에서 창립된 도자기 브랜드로, 수제 핸드페인팅으로 유명합니다(출처: Royal Copenhagen 공식 사이트). 딸기 쇼트케이크가 진짜 제대로였는데, 크림이 전혀 무겁지 않고 케이크 크기도 상당해서 세트 가격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이 갔습니다. 커피가 양이 적은 건 아쉬웠지만 맛은 깔끔했고, 원두를 따로 구입해 나왔습니다.
참고로 이토야의 규모와 역사에 대해서는 이토야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04년 창업 이래 긴자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문구 전문 백화점이라는 설명이 빈말이 아니라는 걸, 8층을 다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납득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긴자 야끼니쿠 런치는 예약 없이 가도 되나요?
A. 일반적으로 런치는 예약 없이 입장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고급 야끼니쿠 식당은 사전 예약을 하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특히 주말이나 관광 시즌에는 런치도 대기가 생길 수 있어, 방문 전날 저녁에 미리 예약해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Q. 네무로 하나마루 웨이팅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A. 오픈 시간인 11시 30분 전에 도착해도 이미 줄이 만들어져 있을 만큼 경쟁이 치열합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보니 지하 2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기하면 1층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를 잡을 수 있습니다. 오픈런을 피하고 싶다면 평일 오픈 타임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Q. 이토야는 몇 층까지 있고 어느 층이 가장 볼만한가요?
A. 이토야 긴자점은 총 12층 규모로 운영됩니다. 제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편지지·카드·마스킹 테이프가 모인 2층이었고, 만년필 마니아라면 3층에서 발을 떼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7층 색지 코너도 놓치기 아까운 공간이지만, 8층쯤 올라가면 체력이 바닥나니 우선순위를 미리 정해두는 게 좋습니다.
Q. 트리콜로르 킷사텐 웨이팅은 복불복인가요?
A. 네, 솔직히 복불복에 가깝습니다. 제가 아침 일찍 갔는데도 계단 2층까지 줄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다만 회전율이 빠른 편이라 오래 기다리지 않는 경우도 있고, 평일 오전이 주말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것 같습니다. 줄이 없다고 외관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곳입니다.
Q. 긴자 하루 코스로 다 돌 수 있나요?
A. 이 글에 소개한 코스 전체를 하루에 소화하려면 아침 일찍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직접 해보니 이토야 하나만 해도 한 시간 반이 훌쩍 넘어갔고, 킷사텐 웨이팅까지 더하면 예상보다 시간이 빠듯해집니다. 쇼핑보다 맛집 중심이라면 동선을 미리 지도에 저장해두고 움직이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결론
긴자를 '고급 브랜드 쇼윈도만 있는 동네'로 오해했던 건 분명히 제 실수였습니다. 실제로 하루를 보내고 나서야 이 동네가 얼마나 다층적인지 실감했습니다. 가성비 런치 야끼니쿠로 든든하게 시작해, 네무로 하나마루의 아부리 연어로 마무리하는 식도락 동선은 제 기대치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반면 이토야와 킷사텐에서 보낸 시간은 음식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만족감을 안겨줬습니다.
쇼핑 예산 앞에서 현실적인 타협을 해야 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하나를 고를 때 더 신중해졌고 결국 더 애착이 가는 물건들만 손에 남았습니다. 긴자에 처음 가는 분이라면 맛집 동선은 아침 일찍, 이토야는 오후 여유 시간에 배치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예산 제한이 있더라도 킷사텐 한 곳만큼은 꼭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커피 한 잔값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의 밀도가 생각보다 깊습니다.